김바바밥

2008/06/29 13:44




오랜만에 아무 일정 없는 토요일..!


저는 아직(도)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토요일엔 저만 빼고 모두 일을 하러 나간다지요.
저는 월~금 근무인 고로.


홈스테이 하던 사촌동생도 방학이라 한국으로 돌아가버려서
집을 혼자 보게 되었는데,
사실 이런 날에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대기 십상이지만..





사실 그 동안 제가 꾸중을 많이 들었어요.


집안에 일거리들 많은 거 뻔히 알고 있지 않느냐
네가 벌어 오는 돈 조금 떼어준다고 해서 그게 다인 줄 아느냐
집안 일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면서 운동한답시고 러닝머신에서 뛰고 앉았고
도와주지 못할 망정 엄마가 해주는 거 먹기만 하고 네가 무슨 공주님이냐
전에 쓰러졌으면서 다이어트는 또 무슨 다이어트냐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
등등...


꾸중을 들어도 말대꾸를 할 수가 없다죠
제 자신도 전부 자각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그래서 오늘은 가만히 놀고만 있으면 안되겠더라구요.

김밥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요리?
사실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끽해봐야 카레라이스, 스파게티, 김치알밥, 계란볶음밥...정도?



변명을 해 보자면
우리 엄마가 요리를 너무 잘 하셔서요.
한 두시간만에 열 몇사람이 먹을 잔칫상을 성대하게 차릴 수 있는 실력.
그래서 웬만한건 어머니께서 다 하시고 말아요.


대신 저는 옆에서 이것저것 거들면서 계속 과정을 지켜보지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혼자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아예 요리라는 걸 모르는 아이들이랑은 다르다
라고 혼자서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도 않으면서 ㅎㅎㅎ






어쨌든.

요리 경험 없는 제가 김밥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막상 만들자고 결심했더니 막막하더군요.



아침에 엄마가 출근하시기 전에 살짝 여쭤봤죠.




"엄마, 김밥 레시피 있어?"
- 그런 거 없어.

"김밥에 들어가는 고기는 어떻게 해?"
- 간장, 설탕, 참기름. 마늘도 넣으면 좋고.

"시금치는?"
- 소금 간하고, 참기름 넣고, 깨소금 좀 뿌려주고.

"당근은?"
- 소금간 하고, 참기름. 당근 자체가 달아서 설탕은 필요 없어.

"밥은?"
- 소금, 참기름, 식용유. 밥이 너무 질게 되지만 않으면 돼.

"그렇구나....."




제가 들은 정보는 이게 다였어요.
그냥 귀로만 듣고 메모도 안 해놓고.





결국 오전에는 빈둥대다가 운동하고 샤워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장 보러 가서 시금치와 고기, 달걀을 좀 사오고

네시 반 정도에 조리 시작.
재료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할 지 몰라서 눈대중으로 대충 잡았어요.

당근 두개, 시금치 한 봉지 탈탈 다 털어 넣고
고기 한가득 두 움큼, 계란 다섯 개, 단무지 남은 거 전부...

(음식을 조금만 만드는 건 구경한 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저도 손이 커지더군요)




... 다른 건 몰라도 시금치는 언제나 저를 배신해요.

늘 이 정도면 좀 많겠다 싶은데 뜨거운 물에 데쳐놓고 물기를 꼭 짜 내면
한 주먹 밖에 안 되어서.

거짓말쟁이 배신자 시금치.



사실,
고기를 간하고 버무려서 볶는 것도 오늘이 난생 처음;
계란을 말아보는 것도 오늘이 난생 처음;

이었는데 말이죠.


예상보다 너무 잘 되는 거여요.
간도 너무 잘 맞추고.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_-;





재료들 준비하면서 맛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어요.

"아 난 진짜 천재인가봐."
"나 좀 짱인데?"



....시간은 우라지게 오래 걸리는 주제에 -_-;





김밥 속 준비하는 건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군요.

문제는 김밥 말기...
과연 김밥속 재료의 양들이 적당하긴 한가 걱정도 되고,
김밥은 몇 번 말아봤지만 좀 서툴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모양도 이상해져서.



양도 많은지라 한참을 서서 낑낑대며 김밥을 말았어요.
 
몇 개 썰어서 맛도 봤는데, 모양은 좀 그랬지만
엄마가 만든 김밥이랑 맛이 똑같았어요. 앗싸.  


김밥 마는 도중에 식구들이 일을 마치고 쇼핑을 하고 돌아왔어요.


식구들이 다들 맛있다고 감탄했어요.

엄마는 오늘 요리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기뻐하셨어요.




- 이거 진짜 전부 다 누나가 만든거야? 안에 들어간 밥도?

"아 당연하지 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눈동자표 김밥입니다





아. 김밥 속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결국에는 전기밥솥에다
밥을 두 번이나 지어야 했다는 사실... -_-


두 번 째 밥 짓고서는
엄마가 남은걸로 초 스피드로 말아주셨어요. ㅎㅎ
아아 난 언제 쯤 저렇게 빨리 만들 수 있지?



다 합쳐서 김밥 열 줄 정도 나왔습니다.
아니다, 더 되나.  열두 줄?
헐.



오늘... 전화로 '돼지야' 라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 소릴 듣고 바로 돌아서서
김밥 열 줄 만들어버렸어요.

어쩔 수 없어요 팔자라서.
돼지띠라서 그런가.



줄창 서서 요리했더니 오른쪽 무릎이 아팠어요.
힘들었으니 좀 쉬어야겠어요.



오늘 성공이었던 고로
토요일마다 식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다음주엔...음... 라자니아를 만들 거에요.
바뀔 수도 있어요. 그건 제 맘.






김밥 만들면서 생각했어요.


김밥 좀 더 예쁘게 빨리 만들 수 있게 되면
누군가를 위해 도시락을 싸 주고 싶다고.


이층 도시락을 구해서
한 층엔 김밥 한 층엔 과일과 초콜릿을 넣어 줄 거에요.


예쁜 종이에 짤막하고 따뜻한 메모도 적어서 위에 붙여 줄 거에요.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요♡"
라구요.



언젠가는.









Posted by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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