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나는 가까운 곳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의 업적, 어려움을 딛고 이겨내며 살아온 삶의 과정,
인격, 말솜씨, 글솜씨,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나도 저런 인물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그 분께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부터 열 까지 모두 진리로 들렸고
게다가 나에게 칭찬과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터라
그 분의 말씀대로만 따르면 모든 일이 순탄하게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러한 느낌들과 생각들이
존경심을 가장한 일종의 극심한 선입견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된 건
그 사람의
가장 추악한 행동과 모순과 배신을 보고 겪은 과정에서였다.
그 이후부터 나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딱히 없다는 대답으로 그저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완벽한 자는 있을 수 없으며
존경이라는 것은 그 대상의 특출나는 단면 만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
존경하기 때문에 그 존경하는 대상의 모든 것이 절대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나약한 면이 있고 때로는 상상하기 조차 힘든 만큼의 추악한 면이 있다.
반대로 보잘것 없고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주옥같은 면을 발견할 때도 있다.
사회적 지위, 외모, 언변이나 글솜씨 기타 등등의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것들만으로
소위 '잘난 사람'인지 '못난 놈'인지 가늠하고 판단하곤 하는데
그러한 기준으로 하나의 인격체가
눈금 자로 길이를 재듯이 단편적으로 판단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선입견 때문에
껍데기에 붙게 되는 '잘난 사람' 혹은 '못난 놈' 이라는 "딱지"가 사라지지 않아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내서 안을 들여다보고 다른 면을 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생각을 속 시원하게 콕 찝어내어 뛰어난 언변과 글빨로 기막히게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인 (내지는 정치인)이 있다고 치자.
이런 인물은 타이밍만 잘 타면 순식간에 스타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가 마치 자신들의 생각과 감성의 대변인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람의 말들의 많은 부분을 “옳다” 라고 판단하여 맹신하곤한다.
하지만 “자신들과 의견이 일치하는 것 =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스타성’은 그의 특유의 화려한 표현력으로 본래의 가치보다 수십 배는 부풀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열광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아니 이 사람 왜 말을 자꾸 바꾸지?”
“어라? 정작 일 시켜보니 쌈박질만 하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네?”
이런 경우에는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한 당사자의 책임도 물론 있으나,
문제의 시발점은 그 인물 자체가 아닌
사람들이 화려한 면만 보고 열광하느라 그 인물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들을 애초에 전혀 캐치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비단 인물을 바라볼 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론이나 사회현상을 판단하는 시각을 형성할 때에도 생길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떠한 현상이나 이벤트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상징성 때문에
그 상징성만 밑도 끝도없이 부풀려지고
그것이 안고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은 완벽하게 뒤에 가려져 무시되고 포장되어진다.
그렇게 묻혀졌던 문제점들이 후일에 사람들의 뒷통수를 치게 되는데
그 때 사람들은 사회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배신당했다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엔
애초에 그들이 자신의 눈을 가려버려
스스로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거늘!
한 가지 분명한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인다는 것이다.
어떠한 인물이나 사상을 단순한 호불호를 뛰어넘어 맹신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주체적인 판단능력과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단순히 들은 말만 되풀이 주절되는
앵무새가 되어버린다.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파란 하늘을 보며 그저 단순히 넓고 아름답다며 좋아하는 것과
하늘 반대편 보이지 않는 어둠과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인식하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나약함과 추악스러움,
못나고 보잘 것 없는 것 뒤에 숨어있을 고귀함,
모순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모순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
완벽한 인간과 완벽한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모순과 이중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도록 잘 들리지 않는 것도 귀담아 듣도록 애쓰며
다른 이들이 한 쪽으로 휩쓸려 갈 때
바로 잡고 깨우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고 노력하는 자가 아닐까.
좀 더 크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그 뒤에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야 겠다.
